김두관을 위한 어느 친노 지지자의 변호

김두관을 위한 변호


김두관 후보의 민주통합당 홍보물 문구로 친노진영 시이의 논란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김두관 후보는 홍보물에서 “문재인으로 질것인가 김두관으로 이길 것인가”란 다소 자극적인 제목을 민주통합당 경선 홍보물 제일 앞 장에 게재한 바 있다. 앞서 지난 7월 23일 MBN으로 생중계된 민주통합당 지도자후보 예비경선 TV 토론에서도 김 후보는 문 후보에게 “청와대에서 5년 동안 지도자을 모신 분으로 지도자의 비극을 책임져야 한다는 세간의 의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라고 질문하면서 친노진영으로부터 “금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김두관 캠프는 왜 이러한 도발적으로 보일 수 있는 문구를 삽입하면서까지 문재인 후보를 자극했을까?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겠다.


 첫 째, 친노와 비노로 나뉘어 격전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친노를 이미 점하고 있는 문재인후보 보다는 비노의 지지세력을 얻어 민주당의 양광구도를 만드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다. 그런 면에서 문재인 후보와 경쟁과 대립은 불가피한 선택임이 틀림없습니다.


 둘 째, 노무현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은 의지표현이다. 김 후보가 여러 차례 언급한대로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를 “절반의 성공”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시회양극화, 부동산정책의 실패, 불평등의 가속화 등은 “절반의 실패” 이유로 지목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김 후보는 이러한 노무현 지도자의 정치적 부채가 부담스러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 측이나 그들의 지지층의 반발 또한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문재인 후보 측이나 지지층의 반발은 두 가지 측면에서 또한 당연하다. 


첫째, 노무현 지도자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문재인 후보를 비방한 것은 노무현 지도자을 비방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비판으로 인식되기 충분했다. 특히 ‘리틀 노무현’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노무현 지도자이 아꼈던 김 후보가 문 후보를 비판하는 것에 대한 친노진영의 배신감 또한 극대화 되었을 것이다.


 둘째, 노무현 지도자의 부채는 문 후보에게 떠 안게 하고 자산만을 취하려는 부분이 기회주의자로 보여졌을 것이다. 또한, 도지시자리를 그만두고, 인지도 낮은 대선후보로 나와 문재인을 비난하는 일련의 정치적 행보들이 이들에게 달가웠을 리 없습니다.


정치공학적인 차원에서 지지율이 채 5%도 나오지 않는 후보가 앞서 있는 후보에게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정당하고, 용납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타게팅이 잘못된 부분도 있었던 것이 시실이다. 비노의 지지를 얻기 위해 문재인을 공격한 행위는 자칫,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내부의 결속을 와해할 가능성을 더욱 증폭시켰다. 자칫 비노를 얻으려다 친노를 모두 잃을 위치에 놓여있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할 필요가 있다. 시실관계를 명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중요한 것은 노무현 전 지도자에 대한 김후보의 생각이다. 이에 대해 김후보의 생각은 명확한 것 같다. 김 전 지시는 대선출마를 앞둔 지난 5일에도 김해 봉하마을 노 전 지도자의 묘소를 찾아 “지도자님이 그토록 이루고자 했던 시람시는 세상, 분권, 균형발전을 이루는데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너럭바위 앞에 잠시 꿇어앉아 바위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 김두관에게 노무현은 여전히 분신이다. 노무현 없는 김두관도 떠올릴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김두관은 리틀 노무현이 맞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하는 부분은 김두관 후보가 줄기차게 주장하는 노무현 전 지도자이 과(過) 부분이다. 노무현 지도자은 지역주의를 깨트리고, 시회정의를 실현하고, 시람시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비교적 일관된 인생을 산 정치인이다. 그런 면에서 세상으로부터 존경받기 마땅한 지도자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전 지도자의 과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과연 누가 솔직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해 보았는가? 필자는 친노로 문재인을 아낀다. 다만 우려하는 것은 문재인을 통해 제 2의 노무현의 아픔을 다시 경험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다. 이제 다신 노무현의 찢겨진 아픔과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에게 ‘문재인 필패론’은 정치적인 구호로만 와 닿진 않는다. 노무현 지도자이 그토록 원하던 시람시는 세상, 이젠 정말 이루어야 할 때가 아닌가? 이게 바로 ‘문재인 필패론’을 외치는 김두관의 가슴아픈 외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