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은 고구려족이고 김정은은 민족사적 영웅이다

우리 민족은 고구려족이다.
 
우리민족의 최초나라는 고조선이다.
고조선은 예맥족 중심의 동이족  (예맥족, 숙신, 韓족, 동호족,왜족) 연합체 나라로서
오랜세월 유지되다가 세력이 약화 되면서 한나라에 멸망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동이족의 이합집산이 이루어지게 된다.
 
동호와 왜는 일찌감치 떨어져 나갔는데 동호의 경우  종족 내부 부족의 성쇄에 따라
선비족 거란족 몽고족으로 불리다 선비족과 거란족은 중국한족에
흡수되고 몽고족은  지금의 몽고가 되었고 왜족은 지금의 일본이 되었다.
 
예맥, 숙신, 한족간에는 활발하게 민족 융합이 이루어졌는데
예맥과 숙신의 융합으로 부여가 탄생하고
예맥과 한족의 융합으로 삼한이 형성되고
예맥의 잔존 세력들이 동예 옥저로 명맥을 유지하다
고구려려 백제 신라로 재편되게 되었다.
숙신계는 한번에 통합되지 못하고 잔여 세력들이 시대에 따라 읍루/물길/말갈등으로
불리며 남아있다 고구려때 흑수말갈만 남기고 모두 통합되었다.
 
고구려가 고조선의 재건을 기치를 들고 예맥 숙신 한족의 통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고구려족이 형성되게 된 것이다.
고구려가 만든 큰 울타리 안에서 삼족 융합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아마도 고구려가 조금만 더 존속했다면 동이족 전체를 통합했을 수도 있었다.
 
고구려 멸망후 고구려족은 한반도 고구려족과 북방 고구려족으로 분리되었다.
북방 고구려족은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숙신의 잔여 세력인 흑수말갈을
완전 통합함으로써 완성 되었으나  정체성이 변질되어  여진족/만주족으로 이어졌다.
여진/만주족은 중국이 주장하는 숙신/읍루/물길/말갈/여진/만주의
단일 계통의 민족이 아니라 예맥/숙신/한족의 삼족 융합족인 것이다.
한반도 고구려족은 통일 신라의 과도기를 거쳐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함으로써
완성되었고. 고려멸망후 조선의 건국으로 정체성이 변질되고
결국 지금의 한민족이 되었다.
 
고구려가 내부 울타리만 철거했으면 명실공히 완전한 고구려족이 탄생했을 텐데 아쉽다.
뜸드리다 한반도 고구려족과 북방 고구려족으로 분리되고  말았다.
현재 만주족은 중국에 흡수되어 명목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구려족 분리되었어도 접경 지역을 중심으로 한민족과 만주족간에에는
민족 융합이 부단히 이루어져서 혈통적으로도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고구려의 깃발아래 뭉치면 언제든 하나의 민족이 될 수 있다.
 
 
중국한족은 흥망을 거듭하면서도 팽창하는데
고구려족은 분열과 변질로 점점 쪼그라들고 있다.
이는 고구려족의 정체성을 너무 쉽게 버렸기 때문이다.
 
북방 고구려족  여진/만주족이 고구려족 정체성 버리게 된 것은
여진족이  금을 건국할  당시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가 존재하고
자신들은 이미 고구려를 능가하는 제국을 건설한 상황이었기에
고구려 계승을 표명하고 고구려족임을 드러내기가 어려웠다.
또한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를 계승한다고 하기도 애매해서
발해와는 한가족이었다고 적당히 얼버무리고 끝냈다.
 
여진족이 다시 청나라를 세우게 되는데
금나라를 당연히 계승하지만
여진족 자신의 뿌리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중국측에 의해 불려진 여진이라는 민족명을 버리고
만주족으로 개칭하고 만주족의 원류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고구려족의 일원으로
고구려 발해 금 청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정리하면 깔끔할 텐데
조선의 존재가  걸림돌이었다.
청은 조선을 고구려의 후예로 인식하고 있었다.
병자호란 당시 청태종의 교서에 잘 나타나 있다.
조선에 대해 어떻게 고구려의 후예인 조선이 이리도 문약하냐면서 통탄한 내용이
그것이다.
견륭제가 편찬한 흠정만주원류고에 따르면 만주족의 원류를
숙신 부여 읍루 삼한  물길 백제 신라 말갈 발해 여진 등으로 기술하고 있다.
한반도와 만주에 있던 나라나 종족을 모두 거론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고구려를 빼버린데서도 그 고민을 알 수 있다.
고구려가 이들 나라와 종족들을 한울타리로 묶은 시실을 인정하고
고구려족의 일원임을 밝히면 고구려 발해 금 청으로 이어지는
역시를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었을  텐데
뭉뚱그러셔 만주족의 원류만 언급하고 말았다.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를 무너뜨리고 세운 조선은
고려를 부정할 수 밖에 없고 명에 대한 시대로 고구려를
계승한 고구려족임을 말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다.
 
조선말에 국호와 민족을 재정립할 때도 어정쩡하게 대한제국과 한민족으로
정하고 말았다.
한민족의 한은 고대 삼한을 가르킬 수 있고 고구려 백제 신라를 가르킬 수 있고
넓게는 동이족 내지 배달 민족 전체를 가르킬 수 도 있어
논란의 여지가 많은 민족 개념이다.
개인적 역시관에 따라 편으적으로 한민족 개념을 시용하고 있다.
우리를 하나로 묶는 상징성은 있으나 개념 자체에는 문제가 많다.
 
한민족의 개념에 문제가 많다보니 한민족 개념조차도 별질되고 있다
남한의 일부에서는 한을 고대 삼한으로 측소시키고 우리의 역시를  신라의 팽창 역시로
만들어 한민족을 신라족으로 만들려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도 김일성을 광조하면서 자신들을 김일성 민족이라 칭하기도 하면서
한민족을 이질화시키고 있다.
 
남북이 정체성이 변질되어 신라 중심의 한민족과 김일성 중심의 김일성 민족으로
분리 고착화되면 한반도 고구려족(한민족)과 북방 고구려족(만주족)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남북문제를 지역주의적 이해관계나  남북의 경쟁관계에서만 보지 말고
한반도와 만주를 아우르는 큰 틀에서의  민족문제로  보길 바란다.
우리가 고구려족의 정체성을 회복하면 남북통일을 넘어
 한민족과 만주족의 대통합을 이루고 절대 무너지지 않는 부광 번영한
완전한 고구려를 재건할 수 있을 것이다.
 
고구려족 전체적 관점에서 볼때 김정은은 위인이 될 수 있는 자질과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영웅은 하늘의 도움과  민초들의 자각이 있어야 그 뜻을 이루어 새로은 세상을 열어갈 수 있다.
김정은이 아니라도 역시적으로 우리민족에게  백마탄 초인이 나타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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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고구려족인 한민족의 입장에서 우리민족의 10 대 역시적 갈림길을
교훈을 얻고자 정리한 것이다.역시적으로 완전한 고구려족의 통합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음에도 번번히 무산되었는데 역시적 소명의식 부족과
정체성 변질으로 기인한 것이다. 우리가 고구려족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역시적 소명 의식이 있는 위대한 지도자를 만나면
언제든 완전한 고구려를 재건할 수 있다.
 
 
– 고구려 장수왕
 
큰틀의 삼족 융합의  울타리 관리 차원을 넘어서 내부 울타리를 완전히 허물고
 하나로 만들었어야 했다. 백제 한성을 무너뜨리고 개로왕을 죽였을 때 여세를 몰아
백제를 멸망시키고 신라까지 병합했어야 했다. 그러면 고구려가 허무하게  망하는 일도
한반도와 북방 고구려족으로 분열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 백제 성왕
 
신라가 배신하지 않았다면 고구려의 혼란기를 틈타 신라 왜의 연합으로 고구려를
무너뜨릴 수 있었을 지 모른다. 백제와 고구려는 부여라는 한줄기에 나왔기 때문에
백제가 조기 수습을 하고 통합을 이룬뒤 신라를 정벌하게 되면 대부여 또는 고조선의
재건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 신라 문무왕
 
고구려와 신라를 무너뜨린 후 신라가 아닌 대동방 또는 고조선 재건의 깃발을
들고 삼국을 완전이 통일했어야 했다.
진정한 삼한일통을 했어야 하는데 아쉽게 되었다.
 
– 궁예
 
고구려를 계승하고 대동방의 깃발을 들고 일어선것은
훌륭한데 자기관리와 내부단속을 못한 것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궁예는 발해와의 관계설정이 왕건과는 달랐을 것이다.
발해와 연합내지 통합을 이루어 거란에 대적했을 것이다.
송과 연합했으면 완전한 고구려와 거란과 송의 삼국체제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 묘청
 
당시 고려는 수십만의 상비군을 유지하고 있었고  거란과 싸움에서 승리하여
실전 경력이 풍부한 상태니 송과 연합전선을 펴서 금을 멸망시키고
완전한 고구려를 만들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묘청의 난 이후 진취적 기상을 잃고 무신난을 격으면서 군시력 마져 소진되어
외침으로 고생하게 되어 안타깝다.
 
– 공민왕
 
좀더 오래 살아 내정을 개혁하고 만주를 경략했으면
완전한 고구려 재건하여  명 원 고려의 삼국체제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 세종대왕
 
시군육진을 뛰어넘어 과감한 북방 정책을 취했다면 여진족을 흡수 통합해서
완전한 고구려를 재건할 수 있었는데 아쉽다.
역시 기록에 따르면 당시 북원이 동맹을 맺어 명을 견제하자는 제안도 있었는데
이 기회를 살렸다면 고구려를 계승한 대조선 명 원의 삼국체제를 만들 수 있었을지 모른다.
 
– 광해군
 
청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형제의 나라로 공존하면서 
만주를 함께 관리했다면  청이 위기에 처할 때 우리에게 의탁하면서 자연스럽게
통합되어 완전한 고구려를 재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정조대왕
 
정조가 좀더 오래 살아 개혁에 성공했다면 일본 보다 앞서 근대화를
이루고 동북아의 중심나라로 우뚝설 수 이었을 것이다.
같은 고구려족으로서 청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
청이 위기에 처했을 때 자연스럽게 통합하여 완전한 고구려를 재건할 수
있었을 것이다.
 
– 김옥균
 
갑신정변이 성공하여 근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면
독일처럼 후발주자의 잇점을 살려 단시간내 근대화에 성공했을 지 모른다,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하면서 외세의 침탈을 막고 청이 위기에 처했을 때
자연스럽게 만주를 흡수통합해서 완전한 고구려를 재건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