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팔작전과 후쿠시마!

                           NHK 스페셜 전기록 임팔작전(2017.08.15)

                                  책임없는 전장, 버마, 임팔

■ 임팔작전 개요

인용출처 : http://www.asyura2.com/17/senkyo230/msg/846.html

바다에서도 미드웨이 해전의 패전으로 일본은 태평양에서 제공권을 잃어 버렸고, 많은 섬을 빼앗겼다. 임팔 작전은 그 열세를 단번에 확 바꾸려는 형세역전을 노린  큰 도박이었다. 이런 계획(수립)에는 무타구치 렌야가 중장에서 대장으로 승진하려면 간단한 선물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임팔 작전은 일본군이 남방제도에서 전황이 나빠진 점을 역전시키기 위해 (군정 관점에서) 기획되었다. 비루마타이의 산악 지대로부터 급습하여 영국군의 배후를 찌르는 전략이다.

많은 숙련된 참모와 작전 담당자는 (병참,보급 부족의 이유) 반대했지만 반대하는 간부 참모는 파면되었고, 다음 경위로 이 작전이 인가, 실행되었다.

다수의 소를 포함한 군대는 제공권을 가진 영국군 항공기에 의해 정찰되었으며, 상공에서 환히 내려다보였기에, (간단히) 정보가 누설되었다.

험준한 산악 지대를 통과하여 일본군이 오려면 소모가 심한 것이라 예측하고 있던 영국군은 굳이 공격하기보다 일본군이 평지에 도달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국군의 예상대로 일본군은 소(牛)부대의 대다수가 좌절하였고, 정글 지대를 순조롭게 빠져나갈 수 없었다.

파김치가 된 일본 병사가 무사히 산악 지대를 빠져나온 곳에, 영국군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일본군은 거의 전멸했다.

“이래서는 싸울 수 없다”고 부하가 무타구치 사령관에 호소해도, 그는 그것을 개의치 않았다. 무타구치 사령관은 지시에 저항하는 부하인 사단장을 파면하고 새 사단장을 보내어 싸움을 계속했다. 그 중에는 군령을 무시하고 독단으로 퇴각하는 부대도 있었다.

그 와중에 참패가 계속됨으로 전황이 확실히 점점 불리해 진다는 것을 알게되자, 무타구치는 “보급로의 시찰”이라 칭하고 몇 안되는 전투기를 호위를 붙여 전선을 이탈해 대만으로 도망했다.

전선에 남겨진 장병은 쇠약하여 말라리아와 이질에 걸려 많은 사망자를 냈다. 퇴각하는 길에는 썩어버린 아사한 시체위에 구더기가 들끓었고, 비바람에 노출된 백골이 끝없이 이어져 있어 ‘백골 가도’라고 불렸다. 끔찍한 참상이었다.

이번 대전 중 일본군이 저지른 가장 비참한 전투라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최고의 우책이 수하에 미치는 영향은 현대의 정책에도 많이 있다.

반성하지 않는 고관도 많다. 고관중에는 그 부하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변함없이 많으며,(그것은) 반복된다. 그것은 일반 사람들이 모르고 무관심 탓 인지도 모른다.

이와같이 무리하게 계획을 한 이면에는 무타구치 자신이 중장에서 대장으로 승진하려면 큰 프로젝트를 성공해야 하는 배려가 있었다고 역사는 보고 있다. 또한 도조 히데키에게 귀여움을 받았던 무타구치에 있어서, 이당시, 토조에게 좋은 선물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  임팔작전과 닮은 후쿠시마 정책

인용출처 : http://www.asyura2.com/17/genpatu48/msg/572.html

임팔 작전을 70년 전 과거의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임팔 작전과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 충분한 논의 · 검토를 하지 않고 터무니없고 무모하며, 위험한 계획을 실행.
– 과거의 교훈, 사실에서 무엇 하나 배우지 않는다.
– 상층부가 생각하는 것은 항상 자신의 돈벌이와 출세뿐.
– 심각한 현실을 무시하고 계획을 그대로 속행.
– 엄청난 희생자수는 완전히 무시. 국민을 벌레같이 취급.
– 비판자에는 일체 귀를 기울이지 않고 철저하게 탄압.
– 비 과학적 · 비논리적인 정신주의, 감정론을 내세운다.
– 모두 대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최고 책임자는 태평스럽게 살면서 천수를   다한다.
– 언론은 진실을 은폐하고, 정부에 편리한 것만을 미리 알아서 보도한다.

후쿠시마를 비롯한 피폭 지역 주민을 대피시키지 않고 죽게 내버려 둔, 칸 나오토, 노다 요시히코, 아베 총리의 죄에 비하면 무타구치 렌야따위는 귀여운 것이다.

이 21세기의 임팔 작전의 희생자는 3만명으로 끝나지 않는다. 앞으로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죽어 간다. 임팔 작전의 퇴로는 ‘백골 가도’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일본 전체가 ‘관(柩)의 열도’가 된다. 

이미 화장터는 풀 가동해도 (밀려오는 화장요청을) 따라 잡지 못하고 있으며, 화장을 대기하는 유해 호텔이 번창하고 있다. 당신은 무사히 살아남을수 있겠는가?

일본을 파멸에서 구원하기 위해 정부에 다음 사항을 요구한다.
– 오염 지역에서의 주민의 강제 피난 · 이주
– 오염 지역에 대한 출입 제한, 오염 확산 방지
– 식품 오염에 대한 엄격한 기준의 적용 · 관리
– 피폭을 가정한 국민의 건강관리 의료체제의 긴급 정비
– 원자력으로부터의 즉각적인 철수. 전체 원전의 폐로 폐쇄

방사능 오염, 피폭에 의한 건강 피해를 무시하고 이러한 문제를 방치하면, 틀림없이 일본은 지옥의 밑바닥으로 떨어져 다시는 오를수 없게 된다고 경고해 둔다.

“이대로 정보를 숨기기를 계속하면 수십년 후 일본인이라는 국민은 정말 한줌밖에 남지 않게될 것입니다.” (유리 반다제프스키 박사)

첨부소견

태평양 전쟁에서 가장 황당하고 무모한 작전을 들라하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팔작전’을 지목할 것이며, 한국인 대다수가 많은 참모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이 작전을 밀어붙인 ‘무타구치 렌야’를 기억하면서 통쾌한 웃음을 지을 것입니다.

임팔작전이 실시된 1944년의 태평양 전황은 이미 일본에게 상당히 불리해져 있었습니다. 이미 연합군이 뉴기니를 탈환하였고, 일본의 ‘절대 국방선’인 마리아나 제도 코앞까지 당도하여 일본은 동남아 점령지대와 일본 본토와의 해상 운송로가 끊기기 직전이었습니다.

무타구치 렌야는 중일전쟁의 도화선이 된 ‘노구교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었습니다. 이 일로 무타구치는 한지로 좌천당한 전력이 있었는데 이번 임팔작전도 노구교 사건과 마찬가지로 일본육군의 고질병인 파벌주의와 모험주의가 일으킨 것이라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임팔은 인도 북동부 아샘지역에 위치한 곳으로 연합군이 중국으로 보내는 보급로의 시작이라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또한 이곳을 거쳐 인도까지 내쳐 진격하면 인도의 영국군을 쫓아버려 인도의 독립을 가져오게 되며 이리된다면 인도가 연합국에서 추축국으로 넘어오던지,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연합국에서 이탈하는 성과를 얻게 됩니다.

이런 전략적 구상은 좋았지만, 임팔작전은 가장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병참의 보급문제였습니다. 거친 산악지대와 정글을 뚫고 나아가야 하는데 도대체 병참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대다수 참모들은 이 작전에 대해 격렬하게 반대하였습니다.

하지만 동남아의 15군 사령관에 임명된 무타구치 렌야는 이런 참모들의 반대를 모두 물리쳤습니다. 다음은 다시읽어봐도 여전히 즐거운 무타구치 렌야의 어록입니다.

  -보급이란 원래 적에게서 취하는 법이다

  -포탄은 자동차 대신 소나 말에 싣고 가다가 포탄을 다 쓰면 필요 없어진 소나 말을 먹으면 된다.

  -정글에서 비행기를 어디에다가 쓰냐?

  -뭐라고? 그딴 걱정은 하지 마. 적을 만나면 총구를 하늘에 대고 3발만 쏘아 보라고.그러면 자동으로 항복하게 되어있어.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니 가다가 길가에 난 풀을 뜯어먹으며 진격하라.

  -사토 그놈은 무기가 없어서, 총알이 없어서, 쌀이 없어서 도망쳐왔다. 이게 말이 되는가. 총이 없으면 대검이 있다. 대검이 없다면 이빨이 있다. Yamato 정신을 잊었는가. 일본은 신이 지켜주는 나라다!(사토는 15군 휘하의 31사단 사단장이었으며 바보같은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31사단을 이끌고 전선에서 퇴각하였다)

  -나는 잘못이 없어! 부하들이 잘못한 거야! (죽기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

전투의 성패는 병참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중요한 것인데 이것을 무시하고 밀어붙인 임팔작전은 참담함 그 자체였습니다!  다리도 없는 강을 건너고 거친 산악지대와 정글을 지나는 동안 운반을 담당하던 대부분의 소들이 죽거나 도망가고 병사들은 지고있던 중화기 부품들을 슬금 슬금 정글에 버렸습니다. 

병참도 부실하고 가지고 있는 화기도 변변치 않은데 그마저도 중화력 부품들을 정글에 버렸으니 죽을 고생을 하고 정글과 산악지대를 빠져나온 병사들이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한 연합군과 제대로 전투가 될리가 만무한 일이었습니다. 패퇴에 패퇴를 거듭하다 병사들 대부분이 굶어죽고 병들어 죽어 ‘백골가도’란 말이 탄생하였습니다! 

임팔작전으로 전사자 32000명, 병사및 아사자 40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어 각 사단은 90% 이상의 병력이 손실되어 임팔작전 전만해도 연합국과 호각지세를 이루었던 버마-벵갈전선이 완전히 붕괴되어 버렸습니다. ‘바보같은 대장은 적보다 더 무섭다’란 말처럼 무타구치란 바보대장으로 말미암아 일본의 남방군은 괴멸적 타격을 입었으며 연합군은 동남아 전황에서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21세기에도 일본에서 ‘제 2의 임팔작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베신조가 총사령관이 되어 일본 전국민을 이끌고 ‘1억 총피폭!’을 향해 맹렬히 진군하고 있습니다. 일본국민들은 ‘먹어서 응원하자!’란 일본정부의 선동을 받아 음식물을 통해 대량피폭되고 있습니다.후쿠시마를 부흥시키자며 방사능 폐기물 수준의 후쿠시마 농산물을 일본 전국에 대량유통시키고 있습니다. 제염이 끝났다며 피난을 떠난 주민들에게 보조금을 끊고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를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여러가지 혜택을 주어 피폭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바보같은 제2의 임팔작전으로 일본인 수천만명이 죽어 나자뻐질 것입니다! 반다 제프스키 박사의 말대로 일본인은 어쩌면 한줌의 소수민족으로 전락해 버릴지도 모릅니다. 화장터가 미어지도록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상가가 망한 지역에 화장터, 납골당이 들어서도, 그래도 일본국민들이 각성하지 않으면 반드시 그리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