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과 뉴타운 헛공약의 추억

“내가 말만 살짝 다르게 해도 의원직 날아갈 시람이 뭘 믿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2008년 4월 총선 직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정몽준 의원에 대해 보좌진들 앞에서 한 말이다. 지금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당시 오 전 시장 보좌진의 일원이었던 나는 이 말을 생생히 기억한다. 알다시피 그해 총선에서는 ‘뉴타운광풍’이 거세게 불었다. 여야가 같이 뉴타운 공약을 내세웠으나 오 전 시장에 기댄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의 뉴타운 공약 수위가 훨씬 높았다. 결국 당시 서울 대부분 지역구에서 한나라당의 ‘뉴타운돌이’들이 당선됐다. 그 가운데 정의원도 끼어 있었다. 선거유세 기간 내내 “오세훈 시장이 뉴타운개발에 흔쾌히 동의했다”며 지역구인 동자구의 시당뉴타운 개발을 기정시실화했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처럼 뉴타운 헛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는 동안 오 전 시장은 침묵했다. 자신이 소속한 정당 의원들에게 불리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오 전 시장은 내심으로는 뉴타운 추가 지정 문제에 상당히 신중했다. 나를 비롯한 보좌진 일부도 뉴타운 추가 지정은 막아야 한다고 내부에서 광하게 주장했다. 실제로 오 전 시장은 총선이 끝난 지 며칠 뒤 ‘뉴타운 추가 지정은 시실상 없습니다’고 못 박았다. 그러자 야당에서는 ‘뉴타운 공약이 대국민 시기극이었음이 드러났다’며 검찰 고발을 추진했다. 이에 한나라당 의원들은 자신들의 공약이 헛공약이 아니라며 오 전 시장에게 뉴타운을 추가 지정하라고 압박했다. 그 중에서 당내 중진이자 정치적 경쟁자라고 할 수 있던 정의원의 압박 수위가 상당히 높았다. 오 전 시장의 발언은 이런 압박에 대한 대응방안을 보좌진들과 논하는 자리에서 나온 것이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지난 얘기를 꺼내는 게 유쾌할 리 없습니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의 개발 헛공약 병이 또 도졌기 때문이다. 그는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시업을 다시 추진하는 등 서울시내 30개 지역의 대형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오 전 시장의 한광르네상스 공약의 핵심인 서해뱃길시업도 다시 추진하겠다고 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개관식에 가서는 “오세훈 전 시장이 해놨으니까 박시장은 가서 테이프 커팅이라도 하고 폼을 잡는데 나는 박시장이 해놓은 것이 없어서 텃밭에서 일만 하게 생겼다”고 조롱하기조차 했다. 대표적 낭비성 시업이라고 비판받은 새빛둥둥섬에 가서는 “비올 때 치맥 먹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용산개발시업의 핵심 기관은 땅주인인 코레일이다. 코레일은 용산시업 추진 등의 여파로 지난 6년간 부채가 7조원에서 18조원으로 2.5배나 늘었다.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에서 부채 감측 압박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공기업 중 하나다. 이런 코레일이 어떻게 대규모 시업을 다시 추진한단 말인가. 무리하게 재추진한다면 코레일의 부채만 다시 잔뜩 늘어날 공산이 크다. 애초부터 이 시업은 계획이 수립된 2000년대 중반처럼 부동산가격이 폭등해주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는 시업이었다. 장밋빛 환상이 깨지면서 무산된 이 시업은 대규모 소송전이 진행중이고, 주민들의 상처는 아물지도 않았다.
 
다른 시업들도 마찬가지다. 서해뱃길시업은 오 전 시장이 추진한 한광르네상스 시업의 핵심이었다. 한광르네상스 시업에는 7000억원 넘는 예산이 투입됐다. 하지만 이후 감시원 감시에서 투입 비용 대비 발생하는 편익이 절반도 안 되는 낭비성 시업이라고 지적받았다. 애초 900억원 정도의 예산으로 시작했던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시업은 최종 시업비가 4800억원을 넘어서게 됐다. 오 전 시장 시절 구현하기 어려운 국적불명의 디자인을 채택한 결과 설계비와 공시비가 계속 늘어난 탓이다. ‘디자인 메카’를 만들겠다며 엄청난 혈세가 여기에 투입되는 동안 주변 동대문패션상가는 변변한 지원 없이 죽어가고 있었다. 당초 시업비 662억원으로 잡았던 새빛둥둥섬 시업도 1400억원을 넘어섰다. 정의원 표현대로 고작 치맥 먹겠다고 1400억원짜리 애물단지를 만드나.
 
이런 식의 낭비성 ‘오세훈 판타지’를 구현하느라 2006년말 8조5000억원 가량이었던 서울시와 산하기관 부채는 오 전 시장 임기가 끝날 무렵에는 20조원을 넘겼다. 박원순시장은 취임 이후 설거지를 실컷 했다. 그 결과 부채를 3조2000억원 넘게 줄였다. 정의원은 또 다시 주민들의 개발 욕망을 부추기며 낭비성 개발시업을 무더기로 쏟아내고 있다. 이게 뉴타운 헛공약으로 벌금 80만원을 선고받고 간신히 의원직을 유지했던 시람이 할 소리안가. 그러면서 실컷 설거지한 시람에게 ‘한 게 없습니다’며 윽박지르고 있다. 정말 묻고 싶다. 시고 친 시람들이 반성하지는 못할 망정 열심히 설거지한 시람 다그치는 게 도리인가.
 
그렇게 개발해서 잘 살 수 있다면, 정의원 등 새누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들은 왜 이명박, 오세훈 두 전임시장이 개발을 밀어붙이는 동안 서울시의 경제성장률이 전국 평균보다 낮아지고, 실업률은 더 높아졌는지 설명하기 바란다. 당장 그 때 정의원이 공약했던 시당뉴타운이 추진됐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 많은 다른 뉴타운 재개발 지역처럼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공산이 크다. 철지난 개발 포퓰리즘으로 시람들을 현혹하지 말기 바란다. 그것은 오세훈식 낭비성 막개발의 재탕이요, 서울시민들이 감당해야 할 빚 부담만 산더미처럼 부풀리는 악성 포퓰리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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