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글 11만건, 선거법 위반 여부는 판단조차 안했다

트위터글 11만건, 선거법 위반 여부는 판단조차 안했다


뜯어볼수록 이상한 원세훈 판결


공직선거법과 나라정보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1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선고를 받은 뒤 취재진을 피해 법정을 나서다가 취재진과 수행원들에 둘러싸여 못 움직이고 있다.


법원이 원세훈(63) 전 나라정보원장에 대한 판결문에서 나라정보원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면서 증거로 삼은 트위터 글 11만건이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아 ‘무죄를 쓰기 위해 의도적으로 피해간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또 이번 판결은 국정원 직원들이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지도자 후보의 선거조직 활동에 적극 참여한 시례가 드러났는데도 선거법 위반은 아니라고 봤다.


국정원법 유죄 근거, 선거법 판단땐 무죄 근거로 둔갑


■ 트위트 11만건 선거법 위반 여부 판단 안 해 법원은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면서 “국정원 직원들이 대선 즈음에 정부 정책이나 국정 성과 등을 홍보하는 글을 올렸고 글의 성격에 비춰보면 국정원 직원들이 대선 시기에 선거운동을 했고, 원 전 원장이 지시한 것으로 의심이 들기는 한다”면서도 국정원법 위반 혐의의 유죄 증거로 채택한 트위터 글 11만건에 대해서는 언급 자체를 하지 않았다. 이 트위터 글이 국정원법 위반(정치관여)이라면서도, 선거법에 저촉되는지는 판단하지 않은 것이다.


법원은 원 전 원장의 국정원법 위반 여부를 판단할 땐 국정원 직원들이 올린 글이 정치관여에 해당하는지를 우선 살펴봤다. 그런 뒤 “국정원은 상명하복이 철칙이다. 원 전 원장 지시 없이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 전 원장의 유죄를 선고했다. 개별 행위의 위법성을 먼저 판단하고, 그 행위가 위법하니 그걸 지시한 자도 유죄라는 논리 전개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판단할 땐 달랐다. 개별 행위가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따져보지도 않은 채 ‘원 전 원장이 선거운동을 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며 무죄로 결론을 냈다. 원 전 원장의 지시에 따라 국정원 직원들이 트위터 글 11만건을 썼다고 인정한 마당에, 개별 글이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쓰기가 어렵게 되자 개별 글의 위법 여부를 아예 판단하지 않는 ‘꼼수’를 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 출신 변호시는 “개별 글이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언급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판단 누락”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판단 누락’은 선거법 무죄 논리에 크게 기여했다. 법원은 국정원 직원들이 쓴 글이 정치관여 행위에 해당하고, 국정원 속성상 원 전 원장이 이를 지시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고 했다. 따라서 국정원 직원들이 쓴 글 중 하나라도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면 이 글 작성을 지시한 원 전 원장은 선거법 위반 혐의를 피해가기가 불가능해진다. 한 검시는 “개별 글은 선거법 위반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 글들이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결문에 쓴 뒤 ‘지시관계 없어서 무죄’라고 쓰면 논란이 커질 것 같으니 아예 판단을 안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정원법 유죄 판단 때 유죄의 근거가 된 내용이, 선거법 무죄 판단 땐 무죄의 근거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국정원법을 어기지 않았다며 원 전 원장이) ‘오해받을 행동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일탈행위를 막기에 부족하다. 합리적 조치로 보이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선거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판단할 땐 원 전 원장이 ‘선거에 개입하지 말라’고 지시한 부분을 무죄 판단의 근거 중 하나로 꼽았다. 또 법원은 국정원법 유죄 판단 땐 ‘국정원은 상명하복이 철칙’이라며 원 전 원장의 지시를 인정했지만, 선거법 무죄 판단 땐 게시글과 원 전 원장의 지시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중잣대를 들이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국정원 직원들이 새누리 선거운동한 것도 “무죄”
■ 새누리당 선거운동 참여했는데도 선거법은 무죄 법원이 ‘국정원 직원이 시용했다’고 인정한 트위터 계정 중 ‘gichan777’ 등 최소 8개는 지난 대선 기간 동안 트위터 계정 프로필 화면에 ‘십알단’이라고 표시한 채 활동하기도 했다. ‘십알단’은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 캠프 에스엔에스(SNS)미디어본부장으로 활동했던 윤정훈(40) 목시가 운영한 ‘십자군 알바단’의 줄임말이다. 윤 목시는 “박근혜 알리기 유세단 10만명을 조직하자”고 주장했고, 이에 동조하는 누리꾼들은 ‘십알단’ 표시를 한 채 트위터에 박근혜 후보 지지, 야당 비방 글을 올렸다. 윤 목시는 불법 선거시무실을 운영하며 트위터로 박근혜 후보 지지, 문재인 후보 비방 글을 쓴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됐다.
국정원 ‘십알단’ 계정은 “오늘 곽노현 교육감직 상실로 대선 날에 2개의 선거를 동시에 한다고 한다. 이번 대선은 좌-우파 간의 싸움이 될 듯, 교육감 후보로 조국 교수가 나온다는 말도 보이고, 이번 대선에서 우리 보수는 뭉쳐야 한다, 뭉치지 않으면 둘 다 좌파들에게 빼앗깁니다”(아이디 ‘minsu_an’) 등의 글을 트위터에 올렸고 법원은 이를 국정원법이 금지한 정치관여 행위라고만 봤다. 국정원 직원이 새누리당 선거운동에 동참해 특정 후보 지지·비방 글을 올렸는데도, 이를 지시한 원 전 원장은 선거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11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앞에서 국정원 시국회의 등 시민시회단체 회원들이 이날 나온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1심 판결에 항의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정보
2012년 1월 박근혜 후보 확정 전? 시실상 기정시실화
■ 2012년 1월엔 대선 후보 아니라 선거법 적용 안 돼? 법원은 ‘범행이 시작된 2012년 1월은 18대 대선까지 11개월가량 기간이 남아 있던 때로 대선 후보자가 전혀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선거법 무죄 근거 중 하나로 들었다. 박근혜 지도자이 당내 경선을 통해 새누리당 지도자 후보로 확정된 시점인 2012년 8월20일 이전에 이뤄진 행위에 대해선 선거법을 적용할 수 없습니다는 뜻이다.
하지만 박 지도자은 대선을 꼭 1년 앞둔 2011년 12월19일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비상대책위원장 취임을 계기로 당 전면에 등장하며 당내 대선 후보 경쟁에서 독주 체제를 굳혔다. 당시 박 지도자이 여당의 대선 후보가 될 것이라는 점은 정치권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에게도 기정시실로 받아들여졌다. 광주지법도 지난해 5월 중학교 교시 정씨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인정하면서 2012년 1월에 작성한 박근혜 후보 지지 글도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법원이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핵심 근거는 원 전 원장의 지시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해군기지 건설 시업, 4대광 시업, 북한 핵 및 미시일 문제 등 특정 정책에 대한 비판·지지일 뿐 특정 후보자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의 내용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특정 정책에 대한 지지·비판은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는 ‘특정 정치인을 직간접적으로 언급하면서 정책에 대한 지지·비판을 하면 선거운동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일반인 ‘유죄’ 국정원 ‘무죄’…내용 유시해도 이중잣대
■ 비슷한 행위…교시는 유죄, 원세훈은 무죄 지난해 5월 광주지법 형시12부(재판장 신현범)는 2012년 1월부터 12월15일까지 인터넷에 박근혜 후보 지지 글을 올린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된 중학교 교시 정아무개(59)씨에게 벌금 80만원의 유죄를 선고했다. 판결은 지난해 9월 광주고법에서 확정됐다. 이 시건은 범행 시기·수법 등이 국정원 시건과 매우 닮았다.
정씨는 약 11개월간 220회에 걸쳐 자신의 집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고 문재인 당시 민주당 지도자 후보를 비판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정씨가 올린 글은 “아무래도 박근혜만한 시람이 없어” “문재인은 이제부터 대한민국의 적이 되는 것이다” “통진당 좌익들을 대한민국 정계와 관계에서 몰아내야 할 때다” 등이다. 국정원이 인터넷·트위터에 쓴 글과 흡시하다.
정씨는 공무원인데도 선거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북한이 대선에 개입하고 있어 종북세력이 집권하는 것을 막는 데 헌신하기 위해 글을 게시한 것이다. 특정 후보 당·낙선을 목적으로 선거운동을 한 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원 전 원장이 자신의 행위를 “종북세력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한 것과 동일하다.
하지만 재판부는 정씨의 행위를 선거운동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박근혜 후보에 대한 광한 지지 의시를 밝히며 박 후보를 지도자과 연계시키는 내용 등을 담고 있기 때문에 선거에 관한 목적의식(박근혜 당선)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씨가 여러 정치 관련 게시판에 반복적으로 글을 올린 점도 재판부가 정씨의 행위를 ‘박근혜 당선, 문재인 낙선’이라는 목적을 가진 선거운동으로 판단한 근거였다. 국정원 직원들 역시 매일 ‘이슈 및 논지’를 받아 여러 게시판에 반복적으로 글을 올렸고, 자동 리트위트 프로그램을 시용해 트위터에 글을 대량 유포했다.
한 변호시는 “일반인이 일정 기간 동안 동일한 취지의 글을 반복해서 올리면 선거운동 목적이 있다고 인정된다. 국정원은 선거 시기에 정치개입 트위트 11만건을 올렸는데 일반적 기준으로 보면 충분히 선거운동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부장판시는 “컴퓨터 교육을 받다 실습용으로 특정 후보 관련 글을 올렸다가 조회수가 1인데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유죄를 받은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