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의론 열풍과 공정한 사회

6.25 사변(事變) 때 국군 졸병이 인민군의 총알을 맞고 ‘빽’ 이라는 소리를 지르고 죽었다고 한다. 빽이 없어서 징집당해 죽게 된 것이억울해서 내지르는 소리이다. 빽이 있는 사람들은 한국전쟁 와중에도 유학하고 귀국하여서는 민족 통일을 논하며, 심지어 정의에 대하여서 한 말씀도 하신다. 그러면서도 빽이라는 소리를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사변이다. 오늘날에도 국방에 관하여서는자식을 무임승차시키겠다는 엘리트 정신은 원정출산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병역미필자들이 국사를 담당하는 것이 유행처럼 된 것도사변이라고 생각도니 6.25 사변이 생각날 뿐이다.독재의 지탱에 도움을 준다고 여겨지는 군에 입대하지 않으려고 손가락을 자르는 이도 있었다. 자유보장이라는 헌법적 원칙을 지키지않는 국가에 대하여 소극정그로나마 저항하겠다는 공화주의적인 저항의식의 발로라고 하겠다. 반면에 네이션을 근저에 깔고 있는자유민주주의자는 ‘옳든 그르든 조국은 조국인데’ 손가락 자르고 애국을 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옳은가?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치적 원칙의 구체적 내용에 대하여 아직까지 합의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신임 소을 원님은 못 사는 일가권속까지 부임지로 솔거하여 정착시켜 살게 하여야만 일가권속들로부터 ‘사람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그래서 높으신 양반의 부인이 관용차를 타는 것이나 자식을 공무원으로 특채시키는 것은 미풍양속을 계승하는 것이다. 지연, 혈연, 학연으로 얽혀진 자기 패거리의 짓거리는 인정으로 감싸고, 다른 패거리에게는 정의의 잣대로 들이 대었다. 그리하여 정의의잣대라는 것도 오락가락하여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불평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배우고 살아왔다.공공정신, 시민정신 혹은 공동선에 대한 관념이 확립되어 있지 않고 정치적인 재료가 되는 개인들이 공정하고 정의로울수가 없었고 부패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에서 조국근대화 세력은 근대화가 지상의 과제라는 구호를 내걸고 개인들을 힘으로 억눌러서라도 이에 매진하게 하였다. 그 후 민주화 시대에는 민주주의를 생활하지도 않고 민주주의라는 구호를 권력 장악의 수사로 이용하는 것 같은 지도자들에게매료되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세기에 우리는 폭력과 사기에 휘둘리면서 정신없이 살아 온 것 같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경제규모에서10위나 되는 강국이 되었으며 민주주의도 어느 정도 정착이 되었다. 지난 날을 돌이켜 보고 폭력과 사기가 없는 공정하고 정의로운개인, 사회 그리고 국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있다.아리스토렐레스는 물질적인 자급자족을 하고 정의의 감각이 팽배하여야 사회가 유지된다고 주장하였다. 자급자족이 되더라도 상대방이 나한테 공정하고 정의롭게 대하여 주지 않고, 나아가 나를 사람으로 인정하고 배려하지 않는다면, 그 국가에 대하여 충성할 이유가없다. 이렇게 보면, 원정출산을 하고 손가락 자르는 이를 나무랄 것도 못 된다. 개인에게는 개체를 보전할 권리와 자신이 옯다고 생각하는 원칙에 충실할 권리가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대한민국은 현재 자급자족할 물질적인 기반이 갖추어져 있다.보다 평등한 배분적인 정의를 실시하고, 서로가 서로를 부살피고 국가가 군민 개객인의 보호에 책임을 진다는 것에 대하여 믿을을 심어준다면, ‘빽빽’ 소리 지를 일도 없고, 손가락 자를 일도 없으며 지식을 외국인으로 만들 새악도 들지 않을 것이다.마침 좋은 기회가 왔다. 마이클 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수만권이 팔렸다고 한다. 한국인의 지적인 수준과 광고술이 놀랍다.게다가 현 정부는 공정한 사회를 국정방향으로 정하였다고 한다. 우리가 공정과 정의에 대하여 생각을 해볼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아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문제점은 없지 않다. 한때는 종합부동산세제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질 듯이 정의로운세제라고 주장하던 정책입안자들과 지식인들은 새 정권이 들어서서 완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반기를 들고 정의의 구호를 왜 왜치지않는가? ‘빽’소리라도 하여야 하지 않는가? 정의로운 세제에 대하여 박수를 쳤떤 국민과 멍하니 보고 있었던 국민과 그리고 죄 지은듯이엎드리고 있던 국민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생각 없애는 방법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는지? 정치의 재료가 되는 국민들이나 엘리트들이 아직까지 그 모양 그 꼴이라며, 또 다시 폭력과 사기로 서로를 이용하고 서로에게 이용당하게 될 것 같다. 어떠한 세제가 과연 옳은 가라는 문제만이 아니라 이제는 어떠한 인간관계, 관행, 제도, 정책 그리고 헌법 등이 공정하고 정의로운지를 다같이 진지하게생각하여 볼 때이다. 그러나 공정하고 정의롭겠다고 마음을 먹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무엇이 공정인지 정의인지를 알아야 하며,알았으면 실천하여 습관화하여야 한다.’좋은’ 것과 ‘나쁜’ 것, ‘올바른’ 것과 ‘그른’ 것에 대한 구분을 하여야 인간의 보편적인 선을 기반으로 하여 인간에게 어떠한 자유와 평등에 대한 권리를 부여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정치와 법은 궁극적으로 윤리에 근거를 두기 마련이기 때문이다.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일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윤리관이 존재하지 않으며 선이 무엇이라고 강요할 수 없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는 국가가선에 대하여 중립적인 입장을 지지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정치가 윤리에 근거를 두는 만큼 권리와 정의에 대한 논의에 앞서 선을논하여야 한다고 공동체주의자는 주장한다. 그래서 공동체주의자인 마이클 샌들의 정의관은 자쥬주의자인 존 롤스의 정의관과 다른다.공정으로서 정의라는 것도 정의에 대한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이처럼 선, 덕성, 자유, 평등, 권리, 공정, 정의, 공동성니 무엇인지를 아는것은 쉽지가 않다. 어떻게 보면, 이것들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이 바로 정치라고 볼 수 있따.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지만 자유민주주의를 국시로 삼는다면, 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정의가 무엇인지를 우선 이해하여야 한다.그런데 공화국이라는 것은 공동체주의를 통하여 공화주의와 연관되며, 공동체주의는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와 공정과정의에 대한 개념이 다르다. 그런데 공동체주의자인 샌들의 책을 읽고 고개를 끄덕인다면, – 샌들의 주장이 잘못이라는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이념보다 공화주의라는 이념을 앞으로 더 중시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화주의에 더 기울게 되면, 손가락을 자른 이를 찬양하여야 하는 근거가 더 많아진다. 양자의 차이를 모르면서 공동체주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남의 집 족보에 나타난 인물을 보고자기 조상으로 알고 자랑하는 것이라고 극단적으로 비유할 수 있다. 물론 자유민주주의도 외국 족보이므로 어느 족보를 소장하여도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리고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타협점도 찾을 수 있을것이다. 그렇더라도 무엇을 어떠한 이유에서 우리의 족보로 할 것인지를 논의하고 결정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는 과정이 바로 정치이며, 정치를 외국인에게 하도급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어쨌든 무임승차한 엘리트 ‘빽’ 소리하고 죽은 졸병과 저 세상에서 만나게 될 때, 당당한 태도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어느 누구도인생을 돌이켜 볼 때에 ‘부당하다’ ‘억울하다’ ‘한이 맺힌다’ 라는 말을 할 수 없도록 국가는 만들어야 한다. ‘뱃속에서 저 세상까지’ 서로가 당당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같이 가꾸어가야 한다. 상대방이 정의롭지 못하면, 내가 정의로워야 할 이유가 없다. 손해보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에서 정의가 긴요하지만, 자유와 평등의 조화를 근간으로하는 자유주의적 정의가 이루어져도 사회는 냉랭할 수가 있다.말하자면, 공정한 사회가 공정하지 않은 사회보다 낫지만, 우의와 배려가 덧붙여지면 금상첨화가 된다. 여기서 “좋은 대학 나왔다는사람치고 나라 생각하는 사람 거의 없다”는 김하중 대사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상대방에 대하여 정의 이상으로 배려하여야사회가 훈훈하여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