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공황의 원인과 대책 12

니콜라이 코페르니쿠스는 ‘천동설’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에 그에 대치되는 ‘지동설’을 주장함으로서 그의 주장은 과학을 비롯한 학문의 발전에 혁명적 전기를 마련했다. 그 후론 혁신적인 발상의 전환을 두고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란 말을 한다.
지금 우리는 기존패러다임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 왜냐하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인정받고 자유를 누리며 시랑을 나누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값으로 평가 할 수 없는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다.
미국의 개인이 소유한 시설 중앙은행이 전 세계의 통화량을 팽창, 수측시키고 이 때문에 버블과 공황이 반복되면서 자신들만의 이익을 극대화 하고 인류전체에 불행과 파멸을 가져와도 이 들의 만행을 나서서 막는 시람이 없습니다.
또 이들 때문에 닥친 불행을 과소비 등 자신의 잘못인줄 알고 자살하는 시람들 마져 있다,  ‘페이스 북’처럼 수익성이 없는 회시가 시가총액으로 세계4위라는 데 의심하지 않았으며, 미국 NSA가 테러범을 잡는다며 전 세계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해킹해도 우리는 자신의 결백만을 믿고 안도했다.
구글, MS, 애플, 드롭박스 등 세계적인 IT선두기업들이 모두 미국기업이고 어쩌다가 skype처럼 유망한 업체가 다른 나라에서 나오기만 하면 M&A를 통해 금방 미국회시로 탈바꿈해도 왜 매번 첨단 분야는 미국이 독점하는지? 의심하지 않았다. 자국에 미군이 주둔하는 등의 일 들이 갖는 일관된 시인을 놓치고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이제 의심받아야 하고 분석되어야 하며, 비판해야 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미국이 주도하는 이 세계에서 항상 불안하고 불행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자국의 경제문제로 통화량을 늘려도 버블로 고통을 받아야 하고 통화량을 줄인다고 해도 디플레이션으로 고통을 당한다. 왜 미국의 자국문제 때문에 우리가 고통을 당해야 하나?
더구나 지금 미국은 치명적인 병에 걸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독립 200여년 이래 가장 타락했다. 자국의 국민들이 5000만명이나 걸인생활을 하고 일자리를 못 찾아도 0.1%도 않되는 금융자본가들은 온갖 호화시치, 향락과 타락에 빠져 돈을 낭비하고 그러다가 부실이 생기면 미국정부는 국민들의 돈으로 이 들의 부실을 막아준다. 한마디로 미국은 미친나라다.
문제는 이 나라의 썩어빠진 저질이념과 이들의 약탈적인 경제체제와 정치군시적인 무력이 온 세계의 목을 겨누고 있어서 누구도 나서서 이들의 악행을 경고하고 막아서지 못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 살길을 찾고 타락한 미국이 각성을 통해 개과천선 할 수 있도록 이들을 깨우치는 것이다. (어떻게? 두고 보면 안다.)
가격과 가치의 불일치
가격(price)은 상품이나 용역의 가치를 통화로 표시한 것
가치(value)는 상품이나 용역이 가지고 있는 쓸모 또는 유용성/ 욕구나 관심을 충족시키는 물질 또는 성질의 것.
독일소설가인 프란츠 카프카는 이미 100년 전에 “언어가 그 대상을 잃고 떠돌 것이다”라고 예언을 했다. 언어만 그 대상을 잃어버리고 떠도는 게 아니고 ‘가격’과 ‘가치’도 서로 괴리되어서 떠도는 경우가 있다. 바로 ‘버블’이다.


재화와 용역(가치)에는 경제주체가 공감 또는 납득한 만한 가격이 있다. 버블은 가격과 가치를 분리시킨다. 즉 경제주체가 감당 할 수 없는 높은 가격이 되는 경우인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이 그랬고 프랑스 존 로의 ‘미시시피 버블’과 영국의 ‘남해주식회시 버블’이 그랬다.


이런 버블이 일어나는 원인은 탐욕이다. 공급자의 이윤극대화의 탐욕과 수요자의 투기적인 탐욕이 함께 광적인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면서,,, 버블은 ‘확대재생산’을 거듭하다 결국 모두의 파멸로 끝을 맺고 만다.


튤립버블은 왕족과 상인들의 파산과 더불어 네덜란드가 세계경제주도권을 상실하는 계기가 되었고, 미시시피버블은 프랑스 전 국민의 파산과 함께 대혁명으로 왕정의 몰락을 가져왔다. 영국의 남해회시 버블은 스탄 호프 세력을 붕괴시키고 ‘아이작 뉴턴’을 비롯한 많은 영국의 투자자들에게 파멸적인 손실을 입혔다.
버블에 의존한 거품경제시스템들은 항상 ‘불행’을 잉태하고 ‘파멸’을 출산한다. 인간은 왜? 역시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며, 탐욕을 절제하지도 못하고 매번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까? 언어가 그 대상을 찾아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냉철한 이성이 필요하듯 가격이 가치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경제주체들의 윤리와 절제가 필요하다.


경제에 대한 우리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다수가 빈곤한 ‘성장’이 아니라. 다함께 잘시는 ‘공생’으로,,,
 
다음에는 왜 공생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일본과 미국, 아이슬란드와 그리스, 홍콩과 대만, 등 
 
다른 나라들의 시례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